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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24인 수호성인

성 세라핌 사로프의 수도자 (축일 1월 2일)

 

성 세라핌 사로프의 수도자

 

 

어린 프로코로스

성인께서는 1759년 7월 19일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00km 정도 떨어진 쿠르스크 지방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이 당시는 이른바 ‘계몽주의’(Enlightenment)의 빛이 유럽과 러시아를 가득 채우면서 무신론(無神論)과 (기독교) 박해의 어두운 시대가 올 것임을 예고하던 때였다. 성인의 부모님인 이시도로스와 아가티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으나 불행히도 아버지는 성인이 세 살 되던 해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릴적 성인의 세례명은 프로코로스였으며, 아홉 살이 되던 해에 큰 병이 들었지만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경험을 하였다. 

 

사로프 수도원

열일곱 살이 되던 1776년 성인께서는 어머니의 축복을 받고 모스크바 남동쪽의 사로프(Sarov)에 있는 수도원으로 가 예비수도자로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성인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은 무엇이나 열심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장 먼저 예배에 참석했다가 맨 나중에 자리를 뜨는 열심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성서를 읽고 기도를 드리면서 잠은 네 시간씩 잤으며,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엄격한 금식을 지켰다. 잠과 휴식이 부족하여 중병에 들기도 하였으나 의사를 불러오는 대신에 기도를 통해 고침을 받았다. 1786년 보제서품을 받고 ‘불꽃’ 또는 ‘불타는’이라는 뜻을 가진 ‘세라핌’을 수도명(修道名)을 받은 성인의 마음은 하늘로부터 온 환상들을 통해 자신을 더욱 강하게 해주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항상 불타올랐다. 

 

‘불꽃’같은 수도자

1793년 사제로 서품되신 성인께서는 일 년 뒤인 1794년 완벽한 고독 속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하느님과만 친교를 나누기 위해 수도원에서 5km 정도 떨어진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성인은 난방용 장작을 패고 먹을 채소를 기르는 일 외에 모든 시간을 성서를 읽고 기도하며 명상하는 데 보냈다. 축일이나 주일이 오면 수도원으로 가서 예배를 드렸으며, 몇 조각의 빵을 들고 숲속으로 돌아오다가 그 빵을 들짐승이나 새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기간에 오두막을 덮친 강도들이 도끼와 몽둥이로 성인의 머리와 허리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고, 성인께서는 다섯 달 동안의 투병생활 후 기적적으로 살아나셨지만 그 이후로는 허리가 굽어진 채 지팡이에 의지해서 살아야만 하는 몸이 되었다. 

 

영적인 가르침과 예언들

1810년, 십오 년 동안의 숲속 생활을 접고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성인께서는 자신의 방에서 완전한 침묵과 기도와 명상의 생활을 계속하셨다. 그리고 오년이 지난 다음 당신 방의 문을 열고 방문자들을 맞이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침묵을 깨는 일은 없으셨다. 그리고 다시 십 년이 흐른 뒤인 1825년에 비로서 성인께서는 영적인 가르침들을 수도자들과 교인들에게 베풀기 시작하셨다. 러시아 각지에서 성인의 축복과 영적인 지도를 받으려고 신자들이 사로프로 몰려들었으며, 성인께서는 병자들을 고치시고 슬픈 사람들을 위로하며 죄인들이 회개하도록 만드셨다. 또한 성인께서는 예언의 은사를 받아 장차 있을 크림전쟁(Crimean War, 1853-1856)과 기근(饑饉) 그리고 한 세기 뒤에 러시아 백성들이 겪을 두렵고도 지난(至難)한 시련(곧, 공산주의 혁명) 등을 예언하셨다. 

 

성인의 안식과 시성(諡聖)

1833년 1월 1일, 새해 첫 날이며 주일인 날에 거룩한 성체성혈을 받아 모시고 난 뒤, 성인께서는 수도원의 모든 형제들에게 축복을 하시면서 ‘너의 구원을 위해 정신을 차리고 분투하라! 승리의 월계관이 준비되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방으로 가셔서 문을 걸어 잠근 채 그날 밤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돌려드렸다. 바로 다음날인 1833년 1월 2일 월요일, 동료 수도자들이 성인을 발견하였을 때는 성모님의 성화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부활성가를 부르는 자세였다. 성인께서 안식하신지 70년이 되던 해에 거룩한 성해의 이장(移葬)이 이루어졌으며, 1903년 7월 19일 러시아정교회는 황제 가족과 러시아 전역에서 몰려온 수많은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적으로 세라핌 수도자를 성인으로 공표(公表)하였다. 10월 혁명이 일어나고 1926년에 성인의 성해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탈취되었으며, 그 뒤 그 자취를 알지 못하다가 1991년이 되어서야 그것들이 상트뻬쩨르부르그의 무신론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후 성인의 성해는 성인께서 오래도록 돌보셨던 디베예보(Diveyevo)의 수녀원으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