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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신앙 탐구

우리의 믿음과 성상

 

우리의 믿음과 성상


정교회의 믿음에 있어서 성상이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성상은 정교회 예배 행위에 있어서 언제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하느님과 그 믿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해 주면서 신자들을 영적으로 이끌어준다.

이러한 성상의 중요성이 교회 역사의 한 시기에 왜곡되고 오도되어 교회 안에서 큰 혼란이 야기되었었다. 바른 믿음에 대한 박해자들과 성상 배척자들은 이렇게 하여 세계 제7차 공의회에서 제정된 성상 경배를 반대하고 공의회 참석 교부들과 성상을 공경하는 신자들을 박해하며 성상을 파괴하였다.

성상 파괴자들은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신데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는가'라고 하며 성상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이신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의 형상을 취하시고 하늘과 땅을 이어 주셨다.

 

성상은 땅이 하늘에 참여함을 나타내주며 사람에게 그 성스러움을 느끼게 해 주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성당이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장소 곧 우리를 하늘나라로 연결해 주는 장소이고 십자가가 구원의 상징인 것처럼 성상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신비를 형상적으로 나타내어 우리를 하느님과 만나게 하고 하늘나라에 들게 하는 교량 역할을 해준다.

성상이 표현해 주는 내용은 모두가 하느님의 계시와 연관되는 것들이거나 성인들의 덕성과 관계되는 것들이다. 성상은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 주는 말씀이다. 성상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이 발산된다. 이러한 성상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신비와 영적인 세계에 몰입하게 해 준다.

 

성상의 역할이 이렇기 때문에 성상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형상으로 발산시키는 자세와 정신으로 성상을 제작하는 것이다. 다볼산의 주님 변모 성상에서 하느님의 빛이 발산되는 것처럼 다른 모든 성상에서도 그리스도의 빛이 발산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성상 작가들은 자기의 예술적인 재능에 의지하지 않고 믿음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화 작가들은 언제나 기도와 금식으로 믿음을 다듬고 하느님의 은혜를 바라면서 제작에 들어간다.

 

성상은 이렇게 영적인 면에 치중하기 때문에 사실적인 면은 중요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형체나 미에 치중하지 않으며 색채, 선, 비율, 명암, 원근감 등 모든 그림의 기본 조건들은 무시되다시피 한다. 

언제나 그 성상이 표현하려는 주제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주체 인물을 표현함에서도 눈은 지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을 응시하고, 입술은 육신이나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이마는 세상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를 더 많이 간직하기 위함이라는 등의 의미가 부각되게 한다.

 

세상의 것을 초월하게 하고 하늘로 인도해 주는 성상의 의미를 알게 되면 누구나 성상 앞에서 엄숙해지고 거룩해지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이런 의미에서 초기부터 교회 안에서 또 각 가정에서 성상을 대단히 유익하게 사용하여 왔다.

이런 성상의 역할과 의미가 한동안 박해자들에 의해 매도되었으나 진리를 지켜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이때에도 교회에 승리를 주시고 성상에 대한 바른 믿음을 복원케 해 주셨다.

 

이 승리의 날이 842년의 사순절 제1주일이었다. 이날을 교회는 정교 주일로 선포하고 오늘 우리가 거행하는 성상행렬식으로 그 승리를 기념하며 성상의 인도로 하늘나라의 기쁨과 축복을 미리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