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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신앙 탐구

주님이 계시는 곳

 

주님이 계시는 곳


다윗은 하느님을 흠모하고 숭상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주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도 기뻤다. 우리는 벌써 왔다. 예루살렘아, 네 문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시편 122,1~2)

이 노래로 우리는 주님 계시는 집이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고, 또 그때가 얼마나 기대되는가를 알 수 있다.

 

봉건 군주 시대에는 임금이 있는 궁궐은 평민으로서는 감히 접근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 하느님 임금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이 계시는 궁전으로 부르신다. 그 궁전이 바로 주님의 옥좌가 있는 우리 성당이고, 주님의 옥좌는 성소의 한 가운데에 있는 제단이 되는 것이다.

성당에 들어서면 전면의 성소 한 가운데에 있는 이 제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제단은 지상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우리의 마음과 영적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한다. 그렇게 되게 하기 위해 제단 위에는 여러 가지 상징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 상징으로 우리는 하늘 나라의 진리와 신비를 찾아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끼릴로스는 제단은 그 위에 그리스도의 성체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제단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제단 되시고 그리스도가 그 제단의 봉헌물이시고 그리스도가 그 성제를 거행하는 사제라고 하셨다.

성 테오도로스는 제단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우리는 고난으로 끌려가시는 그리스도를 또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로 바쳐지시기 위해 제단 위에 누어 계시는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제단은 이렇게 주님께서 거룩하게 계시는 곳이다. 제단은 주님께서 희생당하신 골고다의 언덕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당신을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다. 제단은 신비의 만찬이 베풀어지는 식탁이다. 여기서 모든 신도들에게 영적 양식이 제공된다. 제단은 주님께서 앉아 계시는 지상의 옥좌이다. 여기에 하늘의 영광을 지니신 주님께서 정좌하고 계신다.

이렇게 제단은 성당의 중심을 이루고 있고 세상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거기서 '참다운 삶'의 영기가 나온다. 이 참다운 삶이 세상을 멸망으로 떨어지게 하는 타락과 부패를 방지해 준다.

 

교회의 모든 성사와 예배는 주님께서 계시는 이 제단을 중심으로 하여 제정되었고 여기서 거행된다. 그리고 신도들은 여기서 베풀어지는 주님의 성체성혈의 은혜로 참다운 삶의 힘을 얻고 모든 일에서 축복을 받는다.

이렇게 엄숙하고 중요한 제단이니 우리가 여기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는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제단의 중요한 의미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제단 위에 계시는 주님께서는 계속 우리를 부르신다. 주일 성찬예배에 참례한다는 것은 이 주님의 부르심에 가겠다는 우리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이 세상의 어떠한 약속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여기서 이 약속을 어떻게 지키고 있고 또 이 엄숙하고 거룩한 제단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반성해 보는 것이 좋겠다.

세상적인 약속은 어김없이 지키면서 주님과의 주일 약속은 잘 지키지 않고 있지나 않는지?

지키기는 하지만 마지못해 얼굴이나 내밀기 위해 느지막하게 오지는 않는지?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큰 실례인가! 하찮은 세상 일에서도 약속을 어기고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면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데, 주님과의 약속을 잘 안 지키면 어떻게 주님의 인정을 받겠는가...?!

그리고 어떤 마음과 몸의 단장으로 교회에 나오는가?

일요일이니까 산책하는 기분으로 복장도 간편하게 하고 아는 사람도 만날 겸해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회적인 모임에는 정장을 하고 점잔을 빼고 참여한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가장 위대하신 분이신 하느님과의 만남에 몸과 마음을 단장하지 않고 참여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느님에 대한 큰 불경이요 모독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는 경솔한 탓으로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성당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고 제단에 계시는 주님과의 만남이 우리의 온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만남이고 최상의 공경이 갖추어진 만남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입에서도 다윗과 같이 “주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도 기뻤다. 우리는 벌써 왔다”하는 노래가 저절로 나오고, 거기서 큰 축복과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