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회 예배에서 부르는 성가
(소티리오스 대주교)
정교회 성당의 벽에는 사제가 드리는 성찬예배와 비슷하게 묘사되어 하늘에서 천사가 드리는 예배 모습이 성화로 그려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 강론에서 말했듯이 천사들과 사람들은 함께 하늘과 땅의 주님을 경배합니다. 거룩한 천사들은 하늘의 전지전능하신 분의 옥좌 곁에서 끊임없이 찬송하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찬양드립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지상의 옥좌 주변에 서서, 사제는 거룩한 제단에서 연도와 날마다 드리는 기원과 기도를 올리면서 그리고 신비의 감사 성만찬에서 (다른 예식에서도)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찬송가를 부릅니다.
복음 저자 마태오는 우리에게 주님과 제자들이 함께 했던 최후의 만찬 끝 무렵의 상황을 이렇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찬미의 노래를 부르고 올리브 산으로 올라갔다.”(마태오 26,30)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다인의 과월절을 찬송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그 이후로 사도들은 신자들과 함께 모여서 감사의 성 만찬을 계속해서 거행했습니다. 교회는 이 전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예배에서 신자들이 부르는 찬양송은 사제의 연도와 기도에 결합합니다. 이렇게 성찬예배에서 찬양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천사들을 닮아가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영혼에 평온을 가져오고, 간절한 마음이 생기고, 영적으로 우리 마음이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교부들은 말하길, 예배에서 부르는 찬양송은 신자들의 마음에 유익한 효과가 뛰어나다고 했습니다. 세 분의 교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 대 바실리오스는 "시편은 영혼에 평화를 가져다주고, 평화가 그 영혼을 지배합니다...(이하생략) 슬픔을 없애고 위로와 기쁨을 줍니다." 성 대 아타나시오스는 "찬양송을 통해 마음의 혼란, 무질서, 잔인함이 정상화되고 슬픔을 일으킨 상처가 치유됩니다." 그리고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스는 "찬양송을 부르다 보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성인 즉 거룩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어서 말하기를 "찬양송이 공기마저 거룩하게 해 줍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 공의회의 카논(규범)에서 규정한 것처럼, 성가는 콘서트의 음악처럼 신자들의 귀를 만족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 요한 크리스소토모스는 "쾌락을 즐기는 연극을 보기 위해서 가는 곳이 성당은 아닙니다. 성당은 연극관이 아닙니다."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성가대원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그들의 재능을 드러내는 기회의 시간도 아닙니다. 성가를 부르고 듣는 목적은 개인적인 감정에 빠져서 감동을 하거나, 분위기에 휩쓸려서 예민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가의 목적은 영혼이 간절함을 갖게 하고, 반성하며, 영적으로 깨어있고, 영적 각성을 하며, 진지한 회개를 하고, 더욱 완전한 헌신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기도에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서이고, 하느님을 향한 더욱 강력한 감사의 표시와 영광을 드리는 한 표현의 방법입니다. 동시에 교회 음악의 목적은 하느님 말씀의 의미를 곡조에 넣어서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입니다. 게다가 성가의 대부분은 성경 구절에서 특히 시편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성가대원들이 성가의 의미를 잘 숙지해서 부르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신자들이 다 함께 예배에 깊이 참례할 수 있게 성가의 가사를 이해하고 부르게 해야 합니다. 성가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도이며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주님의 말씀이 더욱더 강조된 방법입니다. 한 해 동안 성당에서 부르는 성가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 정교회의 전체적인 교리와 윤리의 가르침과 우리 주님과 성모님의 주요한 생애와 거룩한 사도들과 매일 축일로 지내는 성인들 생애의 주요 사건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수도사들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공식 교육은 받지 못하고 겨우 읽고 쓰는 법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예배에 참례하면서 그들은 부러워할 만한 풍부한 신학적 지식과 삶의 거룩함을 얻었습니다. 물론 영적 투쟁을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이지만 예배에서 이룰 수 있는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서 우리는 단순히 청각을 기쁘게 하기 위해 노래하는 게 아니라, 기도하기 위해 찬양하기 때문에 정교회 전통에서는 성당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를 들으면서 멋진 예술적 소리를 즐길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를 기도의 공간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성찬예배에서 정교회 성가의 소리는 신비의 감사 성 만찬에서 가장 높은 절정에 도달하기 위해 기도하는 과정의 그 순간순간마다 걸어가는 영혼의 발걸음으로 인도해줍니다. 결과적으로 "믿음과 갈망으로 다가와 영원한 생명의 참여자가 되기 위해서" ('미리 축성된 성찬예배'의 헤루빔 성가 대신에 부르는 성가 가사 중에서 발췌). 믿음과 뜨거운 열정으로 신자들이 거룩한 성작(聖爵)으로 다가오도록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 정교회의 성가는 영적으로 아주 훌륭한 보물이며, 우리는 이것을 상속받았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 증명된 훌륭한 시인들과 성화 작가들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예술적인 가치로도 매우 훌륭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활력을 우리에게 주면서 이어져 내려왔고 신자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어주고 거룩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성가의 가사를 제대로 따라서 듣고 이해하려면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그 의미들이 닿으려면 우리는 주의 깊게 성가 가사를 듣고 이해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큰 가치가 있고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숨겨진 훌륭한 보물을 찾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