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교회 신앙/신앙 탐구

자살의 문제

"자살은 영웅적 행위가 아니며, 삶의 문제 해결 방안도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unsplash

 

자살의 문제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대주교)


한국에서 계속 증가하는 자살의 비율은 우리들의 마음 한구석을 슬픔으로 채우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게 합니다. : 왜, 무슨 이유로 많은 사람이 삶 대신에 죽음을 더 선택하는 걸까요?

물론, 이 질문에 대해 각자가 자기의 신조(信條)에 따라 많은 다른 답변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짧은 기록을 통해 자살에 대한 정교회의 입장을 보여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1. 안타깝게도 몇몇 사람들이 믿고 있는,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닙니다. 생명은 큰 은총으로 첫 창조물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벌인 것입니다.(창세기 2,17 참조)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살기 위해 만들어졌지, 죽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첫 창조물들의 추락으로 영원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지켜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요한 11,25) 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 죽음을 멸하셨습니다. 그리스도 후에 자연스러운 죽음은 사람이 원할 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통치자이신 하느님께서 우리들을 위해서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한 생명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내 말을 듣고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그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다.”(요한 5,24) 그래서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곁에서 생명의 끝이 없는 축제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2. 자살은 영웅적 행위가 아니며, 또한 삶의 문제 해결 방안이 아닙니다. 자살은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하느님의 도움과 개개인의 투쟁으로 대처한다면 어떤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노력이 없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예로 아주 위대한 욥 의인을 보겠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성서의 기록에 의하면 욥은 아주 큰 부자였다가 몹시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성공했던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다가 치욕적이고 주위로부터 웃음거리가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욥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고, 동시에 상상도 못 할 나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했나요? 욥은 이러한 고통의 해결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모든 유혹을 인내로 견뎌내어서 “주께서 욥의 여생에 전날보다 더한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욥기 42,12) 만약 자살했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생명도 잃고 영혼도 잃었을 것입니다.

  3. 자살로 우리들의 의무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브리서 9,27)라는 성서의 말씀처럼, 우리들의 죽음 후에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들의 행위에 대해 해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믿음과 행위에 따라 천국의 영원한 기쁨을 살거나,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살 게 될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다른 것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자살은 큰 죄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맡길 수 없고, 또 자기 자신도 마음대로 할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자신의 잘못에 있다면, 용기를 가지고 잘못을 인정해야만 하고, 잘못에 대해 회개하는 힘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용서의 하느님께서 베드로를 용서해주셨듯이 우리를 용서해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그 후에 잘못을 깨달았지만, 회개를 하지 않고 자살을 선택한 유다의 행위를(마태오 27,3~5 참조) 우리의 이웃들이 따라가는 것은 진정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위의 내용이 사람의 아주 귀중한 생명에 대한, 그리고 자살의 영적,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짧게 설명한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르침을 삶의 지표로 가지며,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여 우리나라에서 자살의 비율이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