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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영적 아버지에게 듣다

왜 착한 사람들은 먼저 데려가시나요?

 

 

왜 하느님은 더 오래 살면 교회나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착한 사람들이 이른 나이에 죽는 것을 그냥 두시나요?

 

추도식의 마지막에도 언급하고 있듯이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하늘에 마련된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고 계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을 가장 적절한 순간에, 영적으로 가장 좋은 순간에 주님 곁으로 데려가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일나무를 키우는 농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농부는 과일나무에서 잘 익은 열매는 땁니다. 그리고 열매가 어떤 것은 일찍 익고, 어떤 것은 나중에 익듯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찍부터 영적인 탁월성을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적으로 빨리 발전한다고 빨리 죽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도 거룩함으로 사회를 놀라게 했던 교회의 많은 성인이 백 세도 넘게 사셨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서는 의인들과 성인 중에서도 그들의 선한 마음이 나쁘게 변질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일찍 하느님의 왕국으로 데려가신 경우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위와 관련해서 왜 어떤 사람들은 전혀 고통도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어떤 사람들은 오랜 세월 고통을 느낀 후에 세상을 떠나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이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신 각각의 은총이 따로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믿지만 그럼에도 수십 년 동안 불치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은 깊은 고통 중에서도 인내와 변함없는 믿음을 간직하는 그들을 통해서, 연약하고 용기 없고 변덕스러운 우리들을 가르치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섭리가 각각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누가 주의 뜻을 좌우할 수 있었으며, 좋은 의견으로 그를 가르칠 수 있었느냐?"(이사야 40,1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주님은 항상 우리에게 최선의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선하신 주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베풀어 주신 최선임을 믿고 감사한다면, 우리의 삶은 이미 하느님 나라의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