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1월 26일] 성 크세노폰 수도자

Ὁ Ἅγιος Ξενοφῶν

 

성 크세노폰 수도자 (1월 26일)


성인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다스리던 때(527-565년 재위,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대성당을 건축하였음)에 콘스탄티노플에서 큰 부(富)와 명성을 지닌 원로원 의원이었다. 그에게는 아내 마리아와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와 요한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자녀에게 훌륭한 가정교육을 시킨 성인은 그들이 나이가 들자 베리투스(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있는 유명한 법률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도록 보냈다. 그러나 불행히도 콘스탄티노플에서 베리투스로 가던 배가 심한 폭풍우를 만나 파선되는 바람에 두 형제는 서로 헤어진 채 간신히 목숨만 구할 수 있었다. 

 

요한은 티레(Tyre)에 가까운 해변에 닿았다. 이 세상 것의 덧없음을 깨달은 그는 그 지역에 있는 한 수도원에 들어갔다. 요한이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아르카디우스는 동생을 잃은 슬픔에 잠시 잠겼으나, 그날 밤 꿈에서 요한이 웃음을 머금고 나타나 자신들의 아버지가 일찍이 그 어떤 것보다 더 영예로운 것으로 가르치셨던 수도생활을 택하도록 권유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후 아르카디우스는 예루살렘으로 가 성지들을 순례하는 도중에 한 경건한 원로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동생 요한이 살아서 수도자가 된 것과 자신의 부모도 나중에 수도자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원로는 아르카디우스를 하리돈(9월 28일) 성인이 세운 수카(Souka)의 수도원으로 데리고 가 자신이 오십 년 동안 머물렀던 한 방을 보여준 뒤 그곳에서 일 년 동안 홀로 기도와 금식하며 지내도록 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들들에게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한 아버지 크세노폰 성인은 가신을 베리투스로 보내지만, 거기서 아들들에 대해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하자 아테네로 가서 찾아보기로 하였다. 

 

아테네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여관에서 그는 자기 주인의 두 아들을 따르던 하인들 중 하나가 수도자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자초지종을 묻는 그에게 이제는 수도사가 된 그 하인은 자신들을 태운 배가 파선한 것과 아마도 그때 자기의 두 주인(아르카디우스와 요한)이 물에 빠져 죽었으리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슬픈 소식을 안고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 그 가신은 어머니 마리아와 크세노폰 성인에게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모두 전해 주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크세노폰 성인은 “주님께서 주셨던 것, 주님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라”(욥기 2,10)라고 하면서 낙타 털옷(마태오 3,4 참조)을 걸치고는 아내 마리아와 함께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새벽녘이 되어 성인과 마리아는 자신들의 두 아들이 금관을 쓰고 보석으로 꾸민 채 그리스도 앞에 서있는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성지순례에 나선 부부는 예루살렘에서 아르카디우스의 영적 아버지를 만나 두 아들이 살아 있으며, 곧 그들을 보게 되리라는 말을 듣게 된다.

한편 하느님의 섭리로 아르카디우스와 요한은 골고타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이틀 뒤 성묘(聖墓)성당에 경배하고 아르카디우스의 영적 아버지를 찾아간 성인과 어머니 마리아는 자신들을 접대하는 두 젊은 제자의 단정하며 분별력 있고 고상한 모습에 놀라 그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를 묻는다. 

 

금욕적 생활로 말미암아 두 아들은 어느새 그렇게 변해 있었던 것이었다. 아르카디우스가 자신이 바로 크세노폰 성인의 아들임을 밝히자 부모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들도 수도자가 될 것을 결심하게 된다. 

이후 두 형제는 부모를 떠나 원로와 함께 사막으로 들어갔다. 크세노폰 성인은 자신의 소유물을 모두 나눠준 뒤 아내 마리아는 수녀원에 머물도록 하고, 자신 또한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