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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24인 수호성인

성 까떼리나 대순교 성녀 (축일 11월 25일)

 

위대한 도시의 천재적인 소녀

성녀는 막시민(Maximin 305-311) 황제 시절, 이집트의 수도이며 예술과 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의 부유한 귀족 세스투스의 딸이었다. 그녀는 고귀한 신분뿐만 아니라 뛰어난 아름다움과 지성으로 말미암아 널리 우러름을 받았다. 가장 훌륭한 대가들과 이름난 철학자들을 사사하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계승자들의 철학적 체계들을 완벽히 이해하였다. 또한 문학방면에서도 뛰어나, 호머(Hormer)에서 버질(Virgil: 고대 로마의 시인. 70-19 B. C.)에 이르는 모든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그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찾아오는 학자들과 외국인 방문객들에게서 배운 다양한 언어로 온갖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지식을 탐구하는 중에서도 특히 의학에 정통하였으며 당시 18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최고 지성으로 불리던 학자들조차 그 지적인 성취를 놀라와 할 정도로 비범한 지혜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순결(성)의 위대함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모든 외적(귀족, 아름다움, 부[富])이고 내적(지식과 지혜)인 조건들에 동등하게 부합되는 젊은이만을 배우자로 받아들이겠노라고 부모에게 선언하였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부

딸의 결심을 듣고 실망한 성녀의 어머니는 도시 가까이에 살고 있던 한 그리스도교 고행자에게 성녀를 보내면서 조언을 구하도록 일렀다. 성녀가 그토록 찾고 있는 바로 그분(배우자)을 알고 있노라고 말한 고행자는 육화하신 하느님이시며, 성부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시고, 모든 순결한 영혼을 신부로 받아들이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려 주었다. 드디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성녀에게 나타난 성모님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맺은 천상의 약혼을 가리키는 표시로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셨다. 

우상과 세속의 지혜를 타파(打破)하심

그런데 당시의 황제가 제국 전체에서 행하는 우상숭배와 불경건한 예식이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벌어지자 성녀는 황제 앞에 나아가 격렬한 어조로 이를 비난하였다. 성녀의 아름다운 용모뿐 아니라 그 단호함에도 놀란 황제는 급기야 로마 제국 전체에서 내로라하는 모든 학자들과 철학자, 웅변가, 논리학자들을 불러 모아 성녀와 겨루게 하였다. 그녀는 모든 상대들이 펼치는 논리의 오류와 모순들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한편 자신의 오류를 인정한 50명의 웅변가들과 황후, 그리고 황제의 절친한 친구이자 군대의 지휘관인 포르피리오스와 200명의 군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으나 이들 모두 분노한 황제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성녀도 끝내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하고 말았다. 이후 400년이 지난 8세기가 되어 성녀의 시신이 시나이 산에서 발견되었다. 현재도 성녀의 성해로부터는 아름다운 향기와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