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한 크리소스톰 총대주교 이장기념 (1월 27일)
새로운 황제의 등극
요한 성인은 카파도끼아의 코마나(Comana)에서 안식한 뒤 그곳의 바실리스코스 성인과 루시안 성인의 무덤 곁에 묻혔다. 다음 해(408년) 성인의 유배에 대한 책임이 있던 아르카디오스 황제와 에브도끼아 황후가 죽고 그들의 아들인 테오도시오스 2세가 황제 자리에 오르자, 함께 유배되었던 성인의 지지자들이 점차 다시 원래의 교구(敎區)로 복귀하였다.
그러다 434년 쁘로클로스 성인(11월 20일)이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되어, 몇 년 동안 황제를 설득한 끝에 마침내 요한 성인의 성해(聖骸)를 콘스탄티노플로 이장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용서와 사랑
그러나 성령의 은총으로 살아 계시던 요한 성인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의 성해를 옮기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성인의 성해를 옮기려던 군인들과 제국 관리들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로 끝났는데, 그것은 성인의 성해가 담긴 관이 마치 땅에 봉인(封印)이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테오도시오스 황제는 성인이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가 성인에게 행한 박해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성인의 성해가 제국의 수도로 되돌아올 수 있게 해주어 오랜 세월 동안 성인을 기다려온 모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원하는 편지를 썼다.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가 성인의 가슴 위에 놓이자마자 관은 별 어려움 없이 움직였으며, 이어서 최고의 위엄을 갖춘 채 콘스탄티노플로 운구(運柩)되었다.
모든 이에게 평화!
테오도시오스 황제는 모든 원로와 함께 성인을 맞이하였다. 땅에 엎드려 무릎을 꿇은 황제는 얼굴을 성인의 관에 대고 성인과 성인의 동료들에게 가해졌던 모든 죄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성인의 관은 성 도마 사도 성당과 성 이리니 성당을 거쳐 마침내 황제들과 총대주교들의 안장처(安葬處)인 성 12사도 성당에 다다랐다.
그곳의 주교좌에 성인의 성해가 모셔지자 ‘모든 이에게 평화!’라고 말하는 성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서 성인의 성해는 제단 아래 안치되었고, 성찬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 후로 전 세계로 퍼진 성인의 성해는 은혜로운 성인의 현존을 계속해서 증언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