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의 필요성
주님께서는 군중을 가르치시고 빵 다섯 개로 남자만도 5,000명 이상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을 행하신 다음 군중을 보내고 혼자 계시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올릴 필요성을 느끼셨다.
주님께서는 인류 구원이라는 중대한 사업을 하시다 보니 식사하실 시간도 나지 않을 때가 많았고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할 시간도 제대로 나지 않으셨다.
그날은 "군중을 보내신 뒤에 조용히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거기에서 혼자 계셨다."(마태오 14,23)
이렇게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셨다.
사람들은 보통 하루를 대단히 분망하게 보낸다. 외적 상황에 몰두하게 되고 그 상태에 머물며 자신의 내면을 돌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외적 세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게 되지만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는 무지해지고 만다. 그리고 소란한 세상 쪽에 기울며 혼자서 조용히 있기를 싫어한다.
다시 말해서 내적인 자신과 함께 있기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내면의 자기에게서 나오는 허무와 공허감과 만나기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현대 생활에서 오는 대도시 생활권이 지닌 문제라던가 산업 사회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 또는 가족관계에서 당면하는 모든 문제를 본질적으로 깊이 파헤치기에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진실하게 살려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혼자서 있을 다소의 시간과 조용한 장소가 필요가 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마태오 6,6)
이 말씀은 성서의 권유이다. 외적인 소란과 관심을 차단하는 문을 닫고 자기 존재의 마음의 골방에 들어가서 "너 자신에게 즉 내 영혼에게 조심시켜라. 너의 것이나, 너의 주변의 것도 아닌, 너 자신만을 조심하라고 하여라. 왜냐하면 나 자신과 나의 것과 나의 주변의 것은 서로 별개이다. '나'라 함은 영혼이요 마음을 말한다. 그 '나'는 하느님의 모상을 닮게 창조되었다. '나의 것'이라 함은 육신과 감성을 말한다. '나의 주변의 것'이라 함은 재물과 일과 기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너 자신을 즉 영혼을 조심하라.”(성 대 바실리오스 )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참된 자신에게 들어가 접촉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알 수 있게 된다.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외적인 나를 살며 내적인 나의 존재를 망각할 때가 많다. 그러면서 가끔 두 가지의 '나' 속에서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된다. '나의 것'과 '나의 주변의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현세의 풍조 속에서 우리는 참된 '나',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나'를 내적인 나의 골방에 들어가 찾음으로써 영적인 파멸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