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라시모스 성인과 사자
예라시모스 성인은 소아시아 지방의 리키아라는 곳에서 태어나셨으며 475년 3월 4일에 안식했습니다.
다음은 예라시모스 성인이 요르단강에서 약 2㎞ 떨어진 곳에서 수행하던 시절에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어느 날 예라시모스 성인이 요르단 강가의 사막을 걷다가 사자 한 마리가 고통스러운 소리로 울부짖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사자의 발에 칼날이 박혀 있었고 상처는 곪아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예라시모스 성인은 사자의 발에서 칼날을 빼내고 고름을 짜낸 뒤 상처를 소독해 주고는 자신의 옷을 찢어 사자의 발을 싸매 주었습니다.
그런데 상처가 다 나은 후에도 사자는 예라시모스 성인을 떠나지 않고 그분이 가는 곳마다 쫓아다녔습니다. 성인은 사자가 은혜를 아는 것을 보고는 감동하여 사자를 자기 곁에 두었습니다.
예라시모스 성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수도자가 그가 거처하는 곳으로 몰려왔으며 그곳에 수도원이 세워졌습니다. 수도사들은 당나귀를 이용하여 강에서 수도원까지 물을 길어 왔는데 당나귀가 풀을 뜯으러 나갈 때는 사자를 딸려 보내 지키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당나귀가 풀을 뜯으러 사자와 함께 나갔는데 사자가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지나가던 사람이 혼자 있는 당나귀를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당나귀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사자는 고개를 떨군 채 수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자가 당나귀를 잡아먹었다고 생각한 성인은 “이제부터는 당나귀가 하던 일을 네가 해야겠다”라고 말했으며 사자는 그날부터 네 개의 물동이가 담긴 큰 바구니를 지고 물을 길으러 다녔습니다. 얼마 후 당나귀를 훔친 사람이 당나귀에게 밀을 신고 그 강가를 지나다가 우연히 사자를 보고는 그만 놀라 도망쳐 버렸습니다. 당나귀를 알아본 사자는 당나귀 끈을 물고 수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죄 없는 사자를 비난했음을 알게 된 성인은 그날부터 사자를 더욱 아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어느 날 사자가 잠시 나간 사이에 성인은 안식하였습니다. 수도원으로 돌아온 사자는 성인이 보이지 않자 불안해하며 먹이도 먹지 않았습니다. 수도사들이 성인의 무덤으로 사자를 데리고 가서 “여기에 성인이 묻혀 있다”라고 얘기해 주자 사자는 울면서 머리를 땅에 찧더니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사자가 이성적인 동물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거룩한 삶을 산 사람들을 영화롭게 해주시기 위해 사자가 성인에게 복종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우리가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은혜로서 갚아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