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2월 5일] 성 아가티 순교자

Ἡ Ἁγία Ἀγάθη ἡ Μάρτυς

 

성 아가티 순교자(2월 5일)


서방(the West)에서 가장 유명한 성인들 가운데 한 분인 성인은 시실리의 까따니아(Catania)에 있는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경건한 삶을 살았던 성인은 자신의 외적 아름다움에 더하여 참된 믿음과 거룩한 성덕을 기르면서 자라났다. 251년경 데시우스(Decius) 황제의 박해가 심하던 시절, 성인이 체포되었을 당시의 나이는 채 열다섯 살이 되지 않았었다. 지방 장관 퀸티니우스는 재판정에 나타난 성인의 아름다움에 끌려 자신과 결혼해줄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거절을 당하자 한 달 동안 사악한 여인 아프로디시아에게 맡겼고, 그 여자는 성녀가 퀸티니우스의 제의를 받아들이도록 온갖 간사한 방법으로 유혹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꾀어도 성인이 굳건한 바위 같은 신앙으로 흔들림이 없자 그들은 다시 퀸티니우스 앞으로 성인을 끌고 왔다.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난 몸으로서 어찌 노예처럼 구는가?' 라고 퀸티니우스가 묻자, 성녀는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종은 참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데 그것은 그분의 은총에 힘입어 자신을 완전히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지방 장관은 자신이 섬기는 우상들을 성녀가 무시하자 얼굴을 때리고는 감옥에 가두었다.

 

다음날 성녀는 만약 생명을 구하고 싶으면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성녀는 우리의 생명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는다고 대답하면서 이 명령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성녀를 나무 기둥에 매단 채 때렸다. 그리고는 쇠로 된 발톱 모양의 기구로 성녀의 몸을 찢고 토치램프에 불을 붙여 성녀의 몸에 난 상처들을 그을렸다. 이때 성녀는 지방 장관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알곡은 도리깨질을 당하고 까불려서 겨를 날려버린 뒤에야 비로소 창고에 들어간다. 내 영혼도 육체의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없다’

 

퀸티니우스는 고문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려 성녀의 가슴을 도려내도록 시켰다. 그리고는 피를 흘리는 성녀를 토굴(土窟)감옥에 던져 가두었다. 그러나 그날 밤 한밤중에 성녀의 수호천사가 눈부신 빛 가운데서 성 사도 베드로와 함께 나타났고, 성 사도께서는 성녀의 상처를 모두 치료해주셨다. 

 

그 뒤로도 퀸티니우스는 성녀를 네 번씩이나 재판정으로 불러냈다. 성녀는 고문을 당할 때마다 매번 다시 기적적으로 몸이 회복되었고, 그런 상태로 다시 나타났으나 퀸티니우스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성녀의 옷을 모두 벗기게 한 뒤 질그릇 조각들이 깔린 곳 위와 이글이글 불이 타오르는 석탄더미 위로 성녀의 몸을 굴리게 하였다. 그때 갑자기 그 도시 전체에 지진이 일어나서 퀸티니우스가 거하는 궁의 일부가 무너졌다. 그리고 성녀의 소식을 듣고 성난 군중들이 지방 장관의 청사로 몰려가 성녀를 풀어주지 않으면 퀸티니우스를 불태워 죽이겠노라고 위협하였다. 그러자 비로소 고문을 행하던 사람들이 고문을 그쳤고, 성녀는 다시 감옥으로 돌려졌다. 감옥에서 성녀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굳건하게 하느님을 믿을 수 있게 하신 주님께 기도하고, 이제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 뒤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기고 안식하였다.

 

사악한 퀸티니우스는 성녀의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못하였고, 그가 타고 있던 마차의 말이 갑자기 내달았을 때 마차에서 떨어져 강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성녀가 안식한 지 일 년 되던 해에 에트나(Etna)산이 폭발하였고, 까따니아는 집어삼킬 듯이 흘러내리는 용암으로 말미암아 도시 전체가 멸망할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그 도시의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이교도들까지도 성녀의 무덤으로 달려가 성녀의 석관(石棺)을 덮고 있던 천을 들어 마치 방패처럼 밀려드는 불(용암)의 강을 향해 들고 있었다. 그러자 곧바로 용암의 흐름이 멈추었다. 

그 뒤로도 수 세기 동안 같은 기적이 여러 번 되풀이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성녀는 그 도시의 수호성인으로서 까따니아의 사람들에게서 열렬한 존경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