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가까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강요하시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각자 자유롭게 결정하여 따르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다만 자유 의지로 결심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몇 가지는 지켜주기를 원하십니다.
그중의 하나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가 9, 23)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그 성격상 처음부터 수련적인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련 생활을 일부 사람만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삶과 인연을 끊고 수도원에 들어가 금식과 밤샘 기도로 영적 수련에 전념하는 수도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이런 생활만이 수련 생활일까요? 수련하려면 모든 것이 궁핍한 상태에서 고생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니까 특정한 일부 사람들만이 감내하는 것일까요? 물론 영적으로 대단히 유익한 수련 생활임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생활로 육적인 자신을 극복하고 세속적인 자아를 버리는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수련 생활이 이처럼 엄격하기에 수도자와 같은 일부 사람들만이 하는 것이고,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닙니다. 아무 제약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탐욕에 이끌리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라고 하신 주님의 요청을 듣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적 수련은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버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버리라고 하신 말씀은 자신과 관계된 모든 것 즉, 의식주와 같은 것에도 관심을 두지 말고 완전히 포기하란 말씀인가요? 물론 아닙니다. 자애로우신 하느님께서 그렇게 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원인이 되는 세속적인 낡은 자신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교만과 탐욕에 물든 자신을 버리고 세속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관심을 돌리고 영원한 생명을 위해 수양하고 단련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가 나오면 반드시 제기되는 게 각자의 시간입니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사정 때문에'라며 핑곗거리를 찾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과 사회적으로 연관되는 행사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육적인 관심사에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일상생활에 우선순위를 두느라 영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습니다. 이런 잘못된 생활 습관부터 고쳐 나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고 훌륭한 수련이 됩니다.
교회는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생활 터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련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과 규칙을 마련해 놓고 우리의 수련 생활을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그 본보기가 수, 금요일의 금식입니다. 간단한 금식으로 일 년 내내 그 요일을 기억하며 반복적으로 지키게 함으로써 육적 욕망을 억제하는 수련이 되게 합니다. 물론 금식 기간에는 부활절이나 성탄절 전에 하는 대 금식도 있습니다만, 간단한 금식으로 잘 수련된 사람은 더 큰 수련의 단계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분야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더 큰 수련에 더 깊게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죄로 물든 자신을 버리고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