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르려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르코 8,34)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십자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절대 불가결의 요소이며, 그것이 곧 삶인 것이다.
교회는 십자가를 우리 믿음의 상징으로 높이 치켜들고 그 밑에서 믿음의 생활을 한다.
교회 성가 작가들은 십자가에 대해 믿음의 방패, 천국의 문, 신자들의 지주, 교회의 울타리, 수련자들의 받침, 신도들의 치장, 참 기쁨의 표상, 병자들의 의사, 온 세상의 수호자, 교회의 아름다움, 천사들의 영광, 악마들의 고통... 등등 여러 가지 찬사를 붙인다.
생명을 베푸는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나타내 준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요한 3,6)
주님께서는 이 영원한 생명을 십자가를 통하여 얻게 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두 팔을 펼치시고 십자가에 오르셨다. 펼치신 두 팔은 우리 죄인들을 포용하고 구원해 주시겠다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고통받으시면서도 당신을 십자가에 단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측은하게 생각하시며 관용과 인내와 사랑으로 하느님 아버지에게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가 23,34)라고 용서해 주시기를 간청하셨다.
십자가는 하느님이시고 말씀이신 주님께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지셨음을 의미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시조들이 그들의 교만으로 인하여 낙원에서 하느님같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이제 그들의 후예들에게 스스로 십자가의 낮추심으로 신화(神化)를 이루게 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분이 생명이시며 승리자이시고 지배자이심을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승리로서 보여 주셨다.
주님의 십자가는 모든 신자들에게 진정으로 자유인이 되게 하기 위해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도록”(갈라디아 5,24) 가르치신다.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의 진정한 자유인이란 죄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죄악의 노예가 아닌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육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기를 죽이고 그리고 승리함으로써 자기의 죄와 정욕과 욕망을 해소시키려면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연관되어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로 죄가 박멸되면 죽음도 소멸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대가는 죽음”(로마 6,23)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고귀한 십자가의 삶에서 고통과 풍파를 이겨 나갈 힘과 인내력을 받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