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하느님의 정의

 

하느님의 정의

(소티리오스 대주교)


사제는 조과 세 번째 연도에서 하느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드립니다. “주님이시여, 당신의 정의와 계명과 사명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또한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기도를 자주 공동으로 드리는 예배에서 하느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구는 주님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오 6,33).

구복단에 다음의 내용을 포함시키신다는 사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정의를 얻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마태오 5,6) 다시 말하자면 구복단에서, 행복한 사람이란 단지 정의만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 배를 채우고 갈증을 풀기 위해서 양식과 물을 찾는 것과 같이 적극적인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정말로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이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느님의 정의"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서에서 하느님의 정의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지키는 것. 미덕의 총체. 옳은 일 즉,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제공하는 죄 없음과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구세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받게 되는 구원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에 의한 정의의 집행이라는 개념으로 제한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가끔씩 사람들은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의미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인간적인 정의로, 또 각 나라에서 정한 재판의 방법과 그에 관한 처벌을 기준으로, 하느님도 인간이 정해 놓은 정의의 법칙을 따라야 하느님도 정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느님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사람들은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는 인간적인 정의와 다르다는 것을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현대 성인 뽀르피리오스 곁에서 수십 년 동안 가르침을 받은 저명한 판사에 따르면,

인간의 정의는 "효율"에 있습니다. 즉 법 위반의 유형과 정도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이 부과되며 이는 형법 및 관련 법에 의해 결정됩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정의는 "회복"에 있습니다. 즉 형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을 치유하고 하느님과의 이전 관계에서 하느님의 율법을 범한 자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아무리 불법과 죄를 지었다 해도 고백 사제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 빠이시오스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정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했습니까?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을 깨닫고 회개합니까? 당신은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오직 사랑이신 하느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심판자는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정죄할 무엇인가를 찾고자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주 사소한 것을 찾고 있습니다. (은둔자 성 테오파니스).

 

하느님의 정의는 하느님이 의롭다 하심과 하느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자애로운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정의는 자비로 베풀어지기 때문입니다. (성 넥타리오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잘못과 죄에 대한 가혹한 형벌을 주시는 분으로 잘못 바라봄으로써 하느님의 형상을 왜곡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모습의 하느님으로 자녀에게 보여지게 합니다. 자녀가 실수를 했을 때 ‘그런 잘못을 저지르면 하느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하거나 어떤 사람이 우리를 모함했을 때 ‘그런 짓을 했으니 하느님께서 너를 불태울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일을 절대로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벌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 곁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것을 만끽하도록 훈육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러한 내용을 듣고 나서 정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다시 새롭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정의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 빠이시오스는 두 가지의 개념의 차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간단한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럼, 두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고, 그들 앞에 과일 열 개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우리는 두 사람이고 과일은 열 개이니 다섯 개씩 나눕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다섯 개를 먹고 나머지 다섯 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 둡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인간의 정의를 가지고 인간의 법을 적용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예를 들었듯이 인간의 정의는 법정에 가서 법에 따라서 판결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과일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나는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과일을 좋아하는 자네가 더 많이 먹게나.”라고 하고 준다면 이 사람은 하느님의 정의를 실천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불공평한 대우받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정의로 보면 이러한 희생은 하느님으로부터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의는 다른 사람의 약점에 대해 무한한 관용에 이를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 올바른 판단력으로 다른 사람의 유익을 목표로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욕해도 화내지 아니하시고, 침을 뱉어도 항의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상대방을 위협하지 아니하셨고, 모든 것을 참음으로 견뎌 내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주님은 박해자들을 아버지 하느님께 정당화하고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아버지 이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릅니다.” (루가 23,34)

우리 모두 인간적인 고정관념을 버리고 하나님의 정의를 얻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