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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2월 16일] 성 플라비아노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Ὁ Ἅγιος Φλαβιανὸς Πατριάρχης Κωνσταντινουπόλεως

 

성 플라비아노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2월 16일)


덕이 높은 사제

446년 쁘로클로스 총대주교가 안식하자 경건하고 덕이 높은 사제인 성인이 계승자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성인의 선출에 반대한 황궁의 시종 흐리사포스는 테오도시오스 2세(408-450)를 통해 성인을 주교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된다. 또한 그는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반(反) 네스토리오스 진영에 있다가 다시금 정반대인 단성론 이단에 빠진 이름난 사제 에프티헤스를 적극 지원함으로써 그가 성인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도록 하는 목표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에프티헤스의 이단적 주장은 곧 단죄됨과 동시에 그는 파문당하였고, 따라서 성인은 로마의 레오 교황(2월 18일)에게 이 일에 관한 편지를 쓰게 된다. 그리고 레오 성인이 보낸 유명한 ‘톰’(Tome to Flavian, 일종의 사목교서)은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엄숙하게 낭독됨으로써 정교의 바른 가르침을 지키는 데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강도 공의회’

그러나 지조없는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디오스코로스의 지원을 받은 이단 세력은 황후 에브도끼아와 한 무리로 황제를 설득하여 잘못된 공의회, 곧 이른바 ‘에페소의 강도 공의회’를 열어서는 플라비아노스 성인과 그 지지자들을 새로운 네스토리오스주의자로 몰며 단죄하려 하였다.

당시 교황의 특사마저 입장이 금지당한 상태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디오스코로스는 성인을 단죄하고는 에프티헤스를 주교좌에 앉히려 하였다. 성인은 목숨을 다하여 제단 쪽으로 나아가려 하였으나 디오스코로스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에 의해 붙잡혀서는 온갖 모욕을 당하며 끌려 나와야 했다. 그리고는 폭력적으로 뭇매를 맞은 다음 유배되던 길에 리디아(Lydia)의 히피다(Hypida)에서 안식하였다.

그 후 테오도시오스 황제가 죽자 섭정을 맡은 풀케리아 성녀는 성인의 성해를 콘스탄티노플의 성 사도 성당에 정중히 안치하였다.(451년 2월) 그리고 같은 해 열린 제4차 세계 공의회에서 디오스코로스와 에프티헤스는 단죄되고 파문당하였다. 

 

성인은 성 레오(Leo I) 로마의 교황, 성 풀케리아(St Pulcheria, 2월 17일) 등과 함께 단성론(單性論) 이단에 맞서 정교의 바른 가르침을 지켜낸 세 분의 위대한 투사로 밀접한 관계 속에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