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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2월 20일] 성 아가톤 로마의 총대주교

Ὁ Ἅγιος Ἀγάθων Πάπας Ρώμης

 

성 아가톤 로마의 총대주교 (2월 20일) 


흑사병

7세기 시실리 섬 태생인 성인은 부모님들이 돌아가시자 더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 수도자가 되었다. 박식(博識)하면서도 지극히 겸손하며 천성적으로 온순한 성인의 마음속에는 애정이 담긴 친절함이 흘러넘쳤다.

성인은 678년 전임자 도누스(Donus)를 이어서 로마 교회의 수장이 될 때까지, 이미 수년간 재정 책임자로서 봉사해 오고 있는 중이었다. 로마의 주교로서 짧은 기간 동안 봉사했으나, 그 어떤 때보다도 더 극심했던 흑사병으로 말미암아 큰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양무리들을 이끄는 ‘선한 목자’처럼 교인들의 행렬(흔히 성인의 성해[聖骸]나 성화를 앞세우고 하는 행렬)과 공적인 기도회를 이끌음으로써 하느님의 진노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기적을 베푸는 주교

한편 성인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게 되었고, 이로써 성인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루는 한 한센병 환자를 성인이 안아주자마자 그의 병이 곧 나았다. (로마교회를 넘어서는) 전체 교회의 차원으로 볼 때, 성인은 특별히 아직 초기의 젊은 기운을 지닌 영국 교회의 신앙과 조직을 튼튼히 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일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부당하게 직위를 박탈당한 윌프리드 성인(4월 24일)을 요크의 본래 교구로 복직시키는 일을 하였다. 

 

교회를 위한 공헌

그러나 성인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제6차 세계 공의회에서 단의론(Monothelitism: 9월 14일에 기념하는 6차 세계 공의회 참석 교부들 참조) 이단을 단죄하는 데 공헌함으로써 비롯된 바가 크다. 이미 680년에 로마에서 공의회를 연 바 있는 성인은 교의와 관련한 두 통의 편지를 콘스탄티노스 황제에게 보내, 그리스도의 두 가지 의지(완전한 신이시고, 완전한 인간이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명백히 밝힘과 함께 세계 공의회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려야 한다는 점 또한 분명히 주장하였다.

공의회가 열리고 이단자들은 단죄되었으며, 681년 9월 교부들은 할키돈(제4차 세계 공의회가 열린 곳)에서처럼 ‘베드로 사도께서 아가톤의 입을 빌어 말씀하셨다’라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성인은 같은 해 1월 11일에 이미 안식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