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함께 하시는 성모님
성모님께 있었던 일들은 모두가 우리 정교인들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일들이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우리 모두의 영적 어머니로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우시게 하심으로써 구원을 주셨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우리의 기쁨이시고 우리의 자랑이시다. 그리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 많은 혜택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 인간이 하느님께 바치는 큰 선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성모님의 축일 중의 가장 큰 축일이 8월 15일의 성모 안식 축일, 즉 성모님께서 돌아가신 날을 경축하는 축일이다. 사람이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이다.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 세상에서의 영원한 이별을 의미한다. 이 이별이 사람들을 슬프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모님의 죽음을 경축한다.
모든 죽음이 남기는 슬픔과 고통을 우리는 믿음 안에서의 특별한 방법으로 성모님의 죽음에서는 경험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이 아무리 이상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해석할 수 없는 것은 전혀 ㅇ아니다. 왜냐하면 성모님께서는 죽으심으로써 이 세상을 떠나셨으나 우리를 잊지 않으셨으며 어머니로서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멈추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 가까이에서 떠나 그분 아드님과 우리 모두의 하느님 가까이로 가셨고 참된 생명으로 가셔서 거기서 사람들과 천사들로부터 공경받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하느님의 아들이 되실 축복을 받으신 분이시기 때문이고 헤루빔과 세라핌보다 더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거기서도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옥좌 옆에 계시면서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해 중보해 주신다.
성모님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빈말이거나 망상이 아니다. 참으로 그런 분이시고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해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찬예배에서 그리스도에게 이렇게 기도하고 있지 않은가!
“구세주여, 성모님의 중보로 우리를 구원하소서.” 그리고 또 다른 데서는 “성모여, 당신을 자애로운 하느님 가까이 계시는 중보자로 모시나이다”라고 찬양한다.
우리도 이 믿음으로 성모님을 찬양하며 공경하여야 한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수천 년 전 한 시대에 사셨던 어떤 전설적이고 역사적인 인물에 불과한 그런 분이 아니다.
그분은 언제나 살아 계시는, 죽으신 다음에도 살아 계시는 그런 분이시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에 모정의 삶으로 언제나 동참하시어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 신자들을 위해 간구하시고 청원해 주신다.
우리 정교회에서는 성모님을 특별하게 공경한다. 이 공경의 뜻에서 여러 가지 축일을 정해 놓고 성모님의 거룩하심과 그 큰 구원의 역할에 감사드리며 여러 가지 성가로 찬양한다. 그중에서도 대축일 기간에 부르는 기원 찬양과 기립 찬양은 성모님께만 올리는 찬양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성모님에 대한 공경의 또 하나의 증거가 되는 것은 그분께 붙여진 여러 가지 호칭이다. 그 호칭으로 교회는 성모님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표현해 준다. 이러한 호칭 중에서 성모님의 그 크신 역할과 그 역할에 대한 경의를 가장 잘 표현한 포칭이 “쁠라띠떼라”이다. 이 말은 희랍어로서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이라는 뜻이다. 이 성상은 하늘을 상징하는 성당 돔의 정상에 위치하시는 “만물의 주관자”, 즉 성모님의 아드님이신 주님과 땅바닥에 있는 우리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성소 정면의 한가운데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모습으로 위치하고 있다.
이렇게 성모님께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계시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성모님께서는 온 세상을 감싸주신다는 뜻에서이다. 마치 구름이 히브리 사람들을 감싸 보호해 주어 그들이 약속의 땅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처럼 감싸주신다. 그래서 기립 찬양에서는 “구름보다 넓은 세상의 피난처시여 기뻐하소서”라고 찬양한다.
두 번째 이유는 지상의 사람들이 간청하는 바를 중보자로서 다 받아 주시겠다는 뜻에서이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당신의 아드님이신 주님께 간구하실 자격과 용기가 충분히 있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이시기 때문에 믿음의 자녀들은 성모님께 기도드릴 때 큰 위로와 평과 그리고 용기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삶의 어떤 어려움이라도 해결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성모님께 의지하며 희망을 걸고 그분이 품속에서 평화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