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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오늘의 축일

[2월 23일] 성 폴리카르포스 주교순교자

Ὁ Ἅγιος Πολύκαρπος ὁ Ἱερομάρτυρας Ἐπίσκοπος Σμύρνης

성 폴리카르포스 주교 순교자(2월 23일)


성인은 베스파시안(Vespasian) 황제가 다스리던 서기 70년경 에페소에서 태어났다. 성인의 제자였던 성 이리네오스 리용의 주교에 따르면 ‘성인은 사도들의 제자였으며, 주님을 직접 보았던 이들과 친분이 있었다.’ 성인의 부모님들은 순교를 당하기 전 성인을 경건한 귀족 여인 칼리스타(Callista)에게 맡겼고, 성인은 그의 돌봄을 받으면서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거룩한 덕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어린 시절 성인은 자선을 행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어찌나 충실했던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곧잘 양모(養母)의 식품창고를 텅텅 비우곤 하였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식량들이 다시 기적적으로 채워졌고, 그래서 칼리스타는 성인의 이름을 원래의 빵그라티오스 대신 ‘풍성한 열매’라는 뜻의 뽈리카르포스로 바꾸었다.

 

성인은 자라면서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던 성 요한 사도(신학자)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 성 요한 사도께서는 성 부꼴로스, 성 이그나티오스 등과 함께 일하고 계셨는데,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곧, 요한 사도. 요한복음 21,20-24 참조)의 가르침에 감화(感化)를 받은 성인은 성 사도 요한의 고난에도 열심히 동참하였다. 결국 성 요한 사도는 파트모스(Patmos)섬으로 추방되기 전 성 부꼴로스를 즈미르나(Smyrna)의 주교로 서품하였고, 성 폴리카르포스를 그의 협력자요 동역자로 임명하였다. 이후 성 부꼴로스는 죽기 전 겸손한 폴리카르포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즈미르나 교회의 선한 목자로서 성인은 자신보다 앞선 사도들과 교부들의 길을 그대로 걸어갔다. 특히 신적인 은총을 가득히 받은 성인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곧 기도 한 마디로 한 주일 동안 쉴 새 없이 타오르면서 시골 지역을 집어삼킬 듯하던 불을 끄거나, 오랜 가뭄을 멈추는 반가운 비가 쏟아지도록 하기도 하였다. 또한 악마에 사로잡힌 사람을 낫게 하거나 병든 이들을 고쳐주기도 했다. 이런 기적으로 말미암아 많은 이교도들이 하느님을 믿게 되었다.

 

101년경 이그나티오스 성인이 쇠사슬에 묶여 로마로 가던 길에 즈미르나를 지나게 되자 성인은 기꺼이 나가 이그나티오스 성인을 반겼고, 이그나티오스 성인은 기쁨에 겨워 성인을 부둥켜안고는 안티오키아의 교회를 돌봐줄 것을 부탁하였다. 성인은 이후 50년 이상을 당신에게 맡겨진 교회를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다. 서기 154년 무렵 성인은 로마로 여행하여 아나클레투스 로마 주교와 함께 이단에 맞서 진정한 믿음을 지키는 문제를 의논하고 즈미르나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성인이 즈미르나로 돌아오자마자 소아시아의 모든 교회는 지방 총독 스트라티오스 콰드라토스가 행한 혹독한 박해에 직면하게 되었다. 필라델피아에서 온 열두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그래도 성인은 몸에 밴 평온함을 유지하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교회와 양(신자)들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붙잡힌 성인은 피에 굶주린 군중들이 고함을 질러대는 원형경기장으로 끌려 나오게 되었다. 지방장관은 성인에게 그리스도를 부인하라고 윽박질렀다. 수많은 이교도의 무리를 탄식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성인께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팔십육 년 동안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었는데, 그분께서는 한 번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이며 구세주이신 분을 욕되게 할 수 있겠는가?"

 

이어서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맹수의 밥이 되게 하겠다는 지방장관의 말에도 성인이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지방장관은 성인을 불에 태워 죽이겠노라고 소리친다. 그러자 성인께서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당신은 잠깐 타다가 꺼지고 말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사악한 자들에게 닥쳐올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자 성인의 말에 화가 난 이교도들은 소리쳤다. “폴리카르포스를 산 채로 불태워라!”

 

투기장(arena) 한가운데로 끌려 나온 성인께서는 마치 성찬예배를 행하려는 듯이 차분한 태도로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늘 당신의 발에 입을 맞추려고 애쓰는 신자들을 위해 발의 신을 벗었다. 살아있는 번제물(燔祭物)처럼 장작더미가 쌓여있는 곳 위에 올라서서 하늘을 우러러보시고는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성인께서 ‘아멘!’하며 기도를 마치자마자 사형을 집행하는 이들이 불을 놓았다. 거대한 불길이 마치 파도처럼 한꺼번에 타올라 성인의 몸 주위를 감쌌다. 그러나 성인의 몸은 타지 않았고, 도리어 아름다운 향내가 고급 향수의 향기처럼 퍼져 나왔다. 불길이 성인의 몸을 사르지 않는 것을 본 집행관들은 칼로 성인의 몸을 찔렀다. 그러자 피가 봇물처럼 흘러나와 불을 몽땅 꺼버렸다. 그 후 신자들은 성인의 성해를 모아 한 장소에 모셨고, 해마다 그곳에 모여 성인의 행적을 기념하였다. 한편 폴리카르포스 성인의 장엄한 순교로 말미암아 한동안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