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적 성장의 기본이며 초석인 겸손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뜨리오디온 시작 - 세리와 바리사이파 주일 (루가 18,10-14)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뜨리오디온 기간을 시작합니다. 뜨리오디온은 부활절을 향한 긴 항해의 시작이며, 신자들이 영적 준비와 훈련을 쌓아가는 기간입니다. 뜨리오디온 기간의 한 주 한 주는 우리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세상적인 것에서 영적인 하늘로 오르게 해주는 사다리와 같습니다.
한 번은 사막의 어떤 수도자가 하느님으로부터 기적을 행하는 은사를 받았는데, 특히 악한 영을 쫓아내는 은사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수도자는, 악한 영들이 무엇을 제일 무서워하고, 어떤 경우에 도망을 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악한 영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제일 무서워하느냐? 혹시 금식 아니냐?"
그러자 악한 영들은 "우리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는 다시 "그러면 철야기도를 제일 무서워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결코 잠을 자지도 않는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자가 "그렇다면 너희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강하게 몰아붙이자,
악한 영들은 "그것은 바로 우리가 결코 얻을 수 없는 겸손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세리와 바리사이파 사람의 비유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겸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뜨리오디온의 첫 주일을 ‘세리와 바리사이파 사람’ 주일로 정하여 우리의 영적 성장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겸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겸손은 온유한 마음과 하느님에 대한 순종, 그리고 사랑과 모든 덕의 근원을 이룹니다. 반대로 교만은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첫 번째 원인이 됩니다. 세상의 모든 악의 요소가 교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하늘의 천사였던 에오스포로스가 악의 무리로 추락한 것도 바로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겸손이 무엇인지, 그 깊은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해달라고 주님께 간청드립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듯 겸손은 연약하거나 미약한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하고 실질적인 힘이며 마음이 강한 이들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나아갑시다. 또한, 우리가 교회에 올 때 혹시 바리사이파 사람처럼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다른 형제들을 비난하거나 험담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교회에 와서 주님의 축복과 자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영적 추락을 자초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깊이 성찰해 보고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 뜨리오디온 기간을 거룩하게 경건하게 잘 보내서 부활절로 가는 여정에서 많은 영적 준비를 할 수 있게 되길 기원합니다. 특히,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드시는 겸손의 모습을 지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