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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루가 17,12~19)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이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이 이러한 배은망덕하고 부끄러운 행동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전혀 고칠 수 없었던 나병이었지만, 그들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중재로 기적을 일으키셔서 어느 누구도 베풀지 못하는 큰 선물을 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몸은 이제 깨끗해졌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은 이제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더 이상 멸시를 받으며 도시 밖으로 소외되고 버려지는 일이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열 사람 모두는 이 기적을 경험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사는 도시를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바로 주님에게 가서 자신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받은 후에 그들의 길은 나뉘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이 그리스도께 돌아와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다른 아홉 명은 신체적으로는 병이 나았지만, 그들의 옳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배은망덕이라는 다른 종류의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잠깐 언급해 보겠습니다.

 

불행하게도 각 시대마다 이러한 모습을 보인 ‘나병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바로 이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매일의 생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사고, 고치기 어려운 병, 직장에서의 문제, 가정에서의 한계 등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울면서 주님께 큰소리로 “주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여! 우리는 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당신 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도움을 바랄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손을 뻗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며 기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이러한 위험과 어려운 시기가 지나고 나면, 그래서 우리가 다시 평화와 안정을 되찾으면, 안타깝게도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이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리스도가 은인이시고 구세주이시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주님께서 우리 곁에 현존하심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필요로 할 때만 그분을 찾고, 어떤 도움을 받고 난 후엔 감사하다는 말씀조차 드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병을 치료받은 후 주님께 찾아가 감사를 드린 그 한 명으로부터 교훈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의 바른 그의 행동은 우리에게 다음의 세 가지를 가르쳐줍니다.

첫째, 다른 많은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우리가 생각할 때 올바른 것이 아니라면, 그들을 쉽게 따라 하지 맙시다.

둘째, 마땅히 해야 할 보답은 나중으로 미루지 맙시다.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와, 우리 이웃이 베풀어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늦지 않게 제때 보답하려고 노력합시다.

셋째, 은혜에 대한 감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어야 하고 이 마음을 진실되게 표현하도록 합시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들었듯이 나병환자는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러시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 가지 들려드리겠습니다. 겨울이 되면 눈이 내려 모든 길이 차단되고 외부와 단절되는 곳에 성 베네딕토라는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이 수도원은 사회와의 모든 연락이 끊겨버립니다. 다만 용기 있고 모험심이 강한 신자들만이 눈 쌓인 산을 넘고 어려운 길을 헤쳐 이 수도원을 방문하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을 잃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수도원에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개들이 있었습니다. 이 개들은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습니다.

한 번은 개 한 마리가 눈에 덮여 얼어있는 한 방문객을 발견하였습니다. 개는 그 사람을 눈에서 파내고 그에게 입김을 불어 따뜻하게 해 주어 정신을 되찾도록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자기 몸 위에 있는 아주 커다란 개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겁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칼을 뽑아서 개의 심장에 깊은 상처를 냈습니다. 그 뒤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서는, 방금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목숨을 구해준 개는 은혜에 대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숨을 거두었고, 그 피가 순교의 증거로 새하얀 눈 위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형제자매 여러분, 앞서 언급했듯이 하느님에 대해, 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 대해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됩시다. 왜냐하면 우리의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산과 배우자와 자녀들과 건강, 심지어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공기도 모두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드리도록 해야겠습니다. 특히 주님의 날인 주일에는, 사랑과 덕으로서 한 주일을 보낼 수 있게 해 주신 데 대한 감사와 영광을 감사의 성사, 즉 성찬예배를 통하여 드릴 수 있도록, 교회의 예배에 꼭 참석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은혜에 대한 보답은 하느님의 다른 큰 축복과 새로운 은총을 당기는 자석과도 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린 이 나병환자에게 주님은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행동을 보시고 그에게 자유와 해방이라는 큰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물질적인 것들은 나쁜 사람에게나 좋은 사람에게나 모두 다 주십니다. 하지만 영적인 것들은,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즉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만 주십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