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오 15,28)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말씀에서 우리는 경계를 뛰어넘는 사랑에 대해 들었습니다. 복음경에 나오는 두 주인공이 그들의 경계를 넘고 있습니다. 한분은 하느님이고, 다른 한 명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사람은 한 가나안 여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의 경계 지역에서 인접한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오직 한 민족만을 위한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온 세상을 사랑하시며 모든 민족들을 안아주고 계십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 교회에서는 “땅에 있는 자도 반가워하라. 주는 능력을 나타내셨도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모든 민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이것은 오늘 복음말씀의 두 번째 주인공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은 큰 고통을 지니고 있는 가나안 여자입니다. 여인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고향의 경계를 넘어서 왔습니다. 복음경 구절을 보면 “이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유다의 경계 지역으로 가신 것은 모든 민족들에 대해 큰 사랑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나약한 여인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는 큰 결정을 내린 것은 자신의 병든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녀의 속을 태우는 용광로 같은 고통이 그녀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가 매우 아픈데, 살고 있는 지역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요? 여권을 들고, 국경을 넘어 외국으로 가서 아이를 치료할 수 있는 적절한 의사를 찾아갑니다. 가나안 여자도 마귀 들린 자신의 딸을 치료하기 위해 이와 비슷한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자신의 고향 경계 너머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여권을 들고 경계를 넘어가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온 힘을 다해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항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주여, 제 아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하지 않고, “주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여,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딸의 비참한 상태가 자신 때문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만약 오늘날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삶에서 어떤 진보나 발전을 전혀 이루지 못하고, 변덕이 심한 행동을 보이고, 가치와 이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나 때문입니다.”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꼭 필요한 순간에, 혹은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아이를 우리 영혼과 육신의 의사이신 그리스도께 데려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인내와 참을성을 가지고 간청하거나 부르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나안 어머니의 아픔은 모든 진정한 어머니들의, 올바른 부모들의 아픔입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음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큰 믿음, 굳건한 믿음,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리스도인 다운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아이들을 위해 그리스도께 간청하면 기적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간청한다면, 주님으로부터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답변을 듣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도록 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