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니콜라스 플라나스 신부 (3월 2일)
아내의 잔소리
성인은 1851년 낙소스(Naxos: 그리스 남부 에게해의 키클라데스 제도 중 가장 큰 섬) 섬에서 경건한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단순하며 신심이 깊은 태도로 이름났던 성인은 이를테면 어머니가 준 빵을 마을의 가난한 사람에게 주거나, 자신의 옷조차 어려운 아이에게 벗어주곤 하였다. 이처럼 성인은 평생 동안 자신이 만족하거나 편안하기 위해 그 어떤 것도 지니지 않았다. 하지만 열일곱 살에 결혼하여 아들을 하나 두었던 그는 자신의 영적인 열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52년 동안 드린 성찬예배
수년 뒤 홀아비가 된 성인은 아들을 부모에게 맡기고, 물려받은 전재산을 빚 때문에 파산한 마을 사람에게 주어버렸다. 그리고는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삶에 전적으로 헌신하면서 아테네 한가운데서 사막의 금욕주의자들과 같은 삶을 살았다. 1884년 사제로 서품 받은 그는 겨우 여덟 가정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거의 생활비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한 작은 성당에 머물며 예배를 인도하였다. 겸손하나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제가 되었다. 성인은 여러 성당에서 52년 동안 날마다 성찬예배를 드렸는 데, 그것도 반쯤은 허물어진 시골의 작은 성당 위주로 드렸다. 그러나 성인은 엄격한 수도원에서 드리는 것처럼 아침 여덟 시에 예배를 시작해서는 오후 두세 시쯤 마치곤 하였다.
가장 사랑받았던 사제
성찬예배 준비 예식을 할 때, 성인은 수많은 작은 종이에 쓰인 신자들(산 이와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두세 시간에 걸쳐 기도하였고, 다시 그 종이꾸러미들을 조심스레 챙겨서는 어느 곳이나 가지고 다녔다. 성인이 이끈 이 예배들로 말미암아 마음이 굳을 대로 굳은 이들이 변화되는 한편 수많은 신자가 성당을 찾았으며, 특별히 저명한 두 작가(알렉산더 모라이티디스, 알렉산더 파파디아만티스)가 성가를 불렀던 예언자 엘리사 성당의 철야예배에서 그러하였다. 성인은 신자들이 준 헌금을 결코 저녁까지 지니고 있지 않았으며, 곧바로 궁핍한 사람에게 주거나 교회의 일을 위해 봉헌하였다. 이로써 성당을 다시 건축하고, 고아 처녀에게 결혼지참금을 주거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학비를 대곤 하였다. 성인은 1932년 3월 2일 평화로이 안식하셨다.
* 성인은 1992년 세계총대주교청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