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예라시모스 요르단의 수도자(3월 4일)
영적인 수련의 생활
성인은 4세기 말경 리키아(Lycia) 지역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도원에서 처음 공동생활을 시작한 성인은 이후 하느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갖고 홀로 떨어져 금욕적인 삶과 기도에 전념하며 영적인 수련을 계속하였다. 다시 그곳을 떠나 성지(Holy Land)로 간 성인은 예루살렘의 성소들을 찾아 경배하고 난 뒤, 사해(Dead Sea) 근처의 거친 사막으로 가 영적인 덕을 쌓는 투쟁을 이어갔다.
제4차 세계공의회(451년, 할키돈) 이후 팔레스타인의 많은 수도자들이 이단의 길을 걷는 힘겨운 시기에 성인 또한 그 자신의 단순함 때문에 잠시 잘못된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이후 다행스럽게도 에프티미오스 성인(1월 20일)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다시 올바른 정교신앙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그래서 에프티미오스 성인과 잦은 만남을 가지는 한편, 매년 함께 사막 깊은 곳으로 가 사순절 내내 그곳에 머물며 금식과 기도로 지내다가 성지주일이 되어서야 되돌아오곤 했다. 사순절의 주중에는 일절 음식을 입에 대지 않다가 주일에만 영성체를 받는 극도의 금욕적인 생활이었다.
맹수도 변하게 한 성인의 덕
그 후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늘어나자 성인은 요르단강기슭에 수도원을 세웠다. 이곳에는 공동생활과 단독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처음 수도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은 먼저 공동생활을 통해 순종과 영적인 덕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충분히 금욕과 겸손을 몸에 익힌 다음 홀로 수도하기 위해 주위의 시골로 떠나갔다. 주중에는 오로지 빵과 물만을 먹으며 살다가 토요일과 주일이 되면 수도원으로 함께 모여들어 성찬예배를 드리고 신비의 성사에 참여하였다. 예배 후 수도자들은 예라시모스 성인과 영적인 대화를 나눈 다음, 자신의 거처에서 하는 수(手) 작업의 재료들과 빵, 물병등을 받아 들고는 다시 자신들의 수도처로 떠나갔다.
한 번은 성인께서 길을 가다가 큰 가시가 발에 박혀 괴로움으로 울부짖는 사자를 만나게 되었다. 성인께서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이 짐승의 고통을 측은히 여겨 가시를 빼주고, 그 상처를 잘 치료해 주셨다. 그 순간부터 이 맹수는 성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짐승은 그 사나운 본성조차 변하여 빵과 채소만을 먹으며 지냈다. 요르단(Jorda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수도원을 떠나지 않던 이 사자는 475년 성인께서 평화로이 안식하시자 더 이상 먹지를 않았다. 그리고 성인의 무덤으로 인도되자 즉시 자기 머리를 땅에 부딪혀 곧 죽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