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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니라.” (2)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니라.” (2)

소티리오스 대주교


(지난 시간에 이어서 구복단의 두 번째 부분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봅니다.)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를 떠나 살았던 사람이 자신이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깨닫고, 탕자처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즉 교회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이제껏 살아온 삶에 대해 더 큰 슬픔과 애통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매일의 자신의 삶의 행로를 점검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기 양심이 자신의 잘못을 확인하게 되면 당연히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다윗 왕은 시편 51편 3절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내 죄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잘못 항상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우리는 이 시편을 ‘회개의 시편’이라고 알고 있으며, 매일매일, 성당에서나 집에서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드릴 때, 여러 번 읽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요한복음 사가는 그러한 영적 무기력에서 우리를 일깨워줍니다. 다음과 같이 쓰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를 저버리는 것이 됩니다.”(1 요한 1:8)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잘 따르려고 주의하고, 우리 죄에 대해 슬퍼하고 회개할 때, 우리는 두 번째 구복단에 해당하는 무리에 포함됩니다.

 

주님께서는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니라.”라고 바로 이어서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이 왜 행복한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셨습니다. 즉,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이들은 개인적인 고통에 대한 대가와 보상으로서, 또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같이 아파한 것에 대한 보상으로서, 하느님으로부터 위로와 위안과 정신적 안정을 받습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 성인은 다음과 같이 물으십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는가?”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답하십니다. “바로 이 지상과 천상에서 모두 위로를 받는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수고한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보상으로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이 지상에서 받는 보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은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해 슬퍼하는 자의 영혼에 무엇보다 먼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를, 은총과 축복으로서 주십니다. 이 평화는 ‘위로의 천사’처럼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찾아옵니다. 이제 이 사람은 슬픔을 느끼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았으니, 하느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그는 또한 “하느님의 뜻에 따른 슬픔”을 느끼는 자기 자신과도 평화를 가지게 됩니다. 우울한 마음, 불안한 마음, 괴로운 마음은 사라집니다. 솔로몬 왕이 말하듯 “마음이 즐거우면 얼굴이 밝아집니다.”(잠언 15:13 참조) 내면의 평화는 또한 얼굴에 감미로움, 화사함, 미소, 겸손한 웃음을 가져다줍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루가 6: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시에 이런 사람들에게는 온유, 절제, 오래 참음, 겸손, 판단하지 않음과 같은 미덕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천상에서 받는 보상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 지상에서 받는 보상은 천상에서 받게 될 영원한 보상에 대한 작은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둘을 샛별과 태양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일출을 예고하는 샛별의 밝기는 어떻습니까? 한낮에 떠 있는 태양의 빛은 또 어떻습니까? 이 둘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 지상에서 받는 영적인 보상과 천상에서 받는 영적인 보상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지상에서 받는 위로와 기쁨은 질병, 인간 삶의 다양한 필요, 악의 유혹과 같은 피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시련으로 인해 줄어듭니다. 그러나 천상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도 존재하지 않고, 죄가 초래하는 모든 부정적인 결과들도 없으며, 그밖에 평화와 기쁨을 조금이라도 가리는 요소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천상의 삶에 참여하는 자들은 지상에서 이미 순결해졌고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몸은 부패하지 않고 불멸하는 운명이 되기 때문에, 부패도 질병도 겪지 않게 됩니다. 악한 사람들과 마귀의 사악함도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과,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 모두가 하느님 나라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로 사도가 말하듯, 그곳, “하느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수많은 천사들이 하느님의 자녀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있을 것이고, 그 자녀들의 이름은 하늘에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히브리 12:22-23 참조).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니라.”라는 구절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슬퍼하는’ 신자들이 미래에 누릴 승리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축복에 대해, 그리스도가 내리시는 안전하고 확실한 선포와 약속입니다. 인간의 언어로는 이 기쁨을 다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성 요한 신학자(복음사가)는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이것을 설명했습니다. “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자들로서 흰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옥자와 어린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옥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양이십니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 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옥좌 앞에 있으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옥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과 항상 함께 계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 7:9-10, 14-15, 17 참조)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주님께서는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자신의 죄를 슬퍼하는 사람들이 이 지상과 하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확실한 일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