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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말씀과 함께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대주교


키가 큰 측백나무 옆에는 항상 덤불이 있습니다. 사자 옆에는 토끼가, 강한 사람 옆에는 약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 옆에는 환자가 있습니다. 부자 옆에는 가난한 자가, 배부른 자 옆에는 배고픈 자가, 부지런한 자 옆에는 게으른 자가 있습니다.

이러한 대조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사자가 토끼를 삼키는 것입니다. 즉, 강자가 약자를 압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면, 우리 사회는 강자가 약자를 삼키는 정글로 변합니다. 영리한 자는 생각이 약한 자를 조롱하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착취할 것입니다. 본능은 사람을 바로 이러한 길로 이끌고 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의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연약한 형제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섬길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극의 겸손에까지 도달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은총에 의해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두 번째 방법은 강자와 약자를 평준화하는 것입니다. 즉 덤불이 키를 맞출 수 있도록, 키가 큰 측백나무를 자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와 같이, 이 길은 유토피아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강자가 약자 위에 들어서는 첫 번째 방법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으로 이어진다면, 모든 것을 평평하게 하는 두 번째 길은 혼란과 무질서의 상태를 발생시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오는 몇몇 구원자가 압제를 행사하도록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비자유주의적 정권이 탄생합니다. 이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로는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로마 15,1)라고 얘기합니다. 스스로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몸을 굽혀서 약한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넉넉하게 살면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고린토 후 8,14) 주라는 사도 바울로의 말을 눈여겨봅시다. 당신은 영적, 도덕적, 물질적으로 넉넉합니까? 당신에게도 이 같은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십시오. 그것들은 “모든 완전한 선물”(야고보 1,17)을 주시는 분께서 당신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그것을 혼자서만 이기적으로 간직하지 말고 선한 청지기로서 남과 같이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자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