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노켄티오스 모스크바의 대주교(3월 31일)
유망(有望)한 교구사제
성인은 1797년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지역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은 까닭에 삼촌의 양자가 되었으며, 활기 넘치는 지적 면모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기술적인 일, 그 가운데서도 시계를 만들고 나무로 하는 작업에 탁월한 재능을 나타냈으며, 어릴 때부터 안식하시는 날까지 이 같은 일을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결혼을 하자마자 곧바로 사제가 된 성인은 장래가 촉망되는 교구사제이었다. 그러나 1823년 알래스카에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모스크바의 주교회의가 서신을 보내오자 성인의 마음은 알류샨 원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도적 열정으로 활활 타올랐다.
우날라스카의 선교
14개월에 걸쳐 시베리아를 횡단함으로써 마침내 우날라스카 섬에 도착한 성인과 가족은 황폐해져 쓰지 못하는 작은 성당을 발견하였다. 당시 그곳 거주민 중 많은 사람이 이전 세대에 온 선교사들로부터 세례를 받긴 하였으나, 그동안 사제가 없는 관계로 대부분의 사람은 복음의 기초적인 진리도 모른 채 도덕적인 타락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성인은 무엇보다 먼저 성당을 손수 재건하고, 기본적인 교리교육을 시행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언어를 배워 예식서들과 복음서의 내용을 번역하였다. 또한 여러 섬을 위험한 배에 몸을 맡긴 채 항해하면서 설교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이 같은 10년의 노력으로 우날라스카 섬에는 단 한 명의 우상숭배자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러시아 교회를 새롭게 하다
그 뒤 시트카 섬에 정착한 성인은 1838년 러시아 여행 중에 아내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바로 수도서원을 하였으며, 자녀들은 교회의 보살핌에 맡겼다. 그리고 1840년 캄차카와 알래스카의 주교가 되었으며 시트카로 다시 돌아와 성당과 학교를 세웠다. 또한 3년 동안 광활한 캄차카 반도를 3,000마일 이상 가로질러 걸으며 복음을 전하였다. 1850년 시베리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야쿠츠크 지역이 성인의 관할로 합쳐지자 그는 아무르강을 따라 만주 지역과 중국에까지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웠다. 1868년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로 러시아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선출된 성인은 그 뒤 10년 동안 학교와 자선기관, 교회 조직등을 새롭게 하고, 무엇보다도 선교사업에 크나큰 영감을 불어넣다가 1879년 평화로이 안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