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교회 영성/영성의 샘터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

암브로시오스 조성암 한국 대주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빤아기아의 성화 형태 이외에 정교회 교인들에게 대단히 친숙한 또 하나의 형태는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으로서의 빤아기아의 성화이다.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이라는 호칭은 성 대 바실리오스의 성찬예배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분은(하느님은) 당신 태를 옥좌로 삼으시고 당신의 몸을 하늘보다 더 넓게 만드셨도다.”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의 성화는 아주 오래된 형태이다. 이미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부터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의 성화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 예로 로마의 코모딜라 성녀와 아그네스 성녀의 지하 무덤에 그려진 성화, 그 후의 시나의 성 에카테리나 수녀원에 소장된 이동신 성화와(기원후 6세기) 로마의 Samta Maria Antiqua 성당의 벽과(기원후 7세기)등이 있다.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으로서의 빤아기아는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 서 있는 전신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팔을 활짝 벌린 채 가슴에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가 원 안에 그려져 있는 반신상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웅장한 옥좌에 앉아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전신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으로서의 빤아기아를 그린 모든 그림을 보면 그녀의 오른쪽과 왼쪽에 대천사가 각각 한 명씩 기도하는 자세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분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의 형태 또한 하느님이신 말씀이 육화하신 교리를 가르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의 성화는 정교회 성당의 지성소가 위치한 곳의 둥그런 벽면의 사분의 일 반구에 그려지는 전통이 형성되었는데, 이는 마치 빤아기아가 발코니에 서서 성당에 모인 교인들에게 모든 백성이 기다려왔고 또 온 인류의 구세주이신 외아들 성자를 들어 올리며 소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의 성화의 중심 주제는 결국 테오토코스가 아니라, 성화의 중심에 계시면서 한 손으로는 축복을 내리시고(신성의 상징) 다른 한 손으로는 두루마리(하느님의 말씀을 상징)를 들고 계시는 하느님이시자 말씀이신 성자이다.

그런 이유로 비잔틴 형식의 정교회 성당에서는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이 성당의 지붕과 바닥을 이어주는 건축학적인 자리(지성소 둥근 벽 쪽의 사분의 일 반구)에 그려진다.

 

성당의 둥근 지붕에는 왼손에는 거룩한 복음을 들고 계시며 오른손으로는 땅(성당의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시는 만물의 주관자(Pandokrator)의 성화가 항상 그려진다. 만물의 주관자와 사람들 사이에, 다시 말해서 하늘과 땅 사이에,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즉 창조주와 그분의 피조물들을 이어주는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이 계시는 것이다. 그녀는 팔을 넓게 벌리고 애정과 사랑으로 마치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처럼 온 인류를 끌어안고서는 외아들이신 성자에게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광범위한 기도를 드린다. 바꾸어 말하면 하늘보다 더 넓으신 분의 성화는 절대적으로 교훈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하느님이신 말씀이 사람으로 태어나심으로써 빤아기아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다.

 

빤아기아는 자신의 성화가 그려진 그 높은 위치에서 마치 높은 설교단 위에 서있기나 하듯이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성당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간곡히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