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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신앙/신앙 탐구

세례자 성 요한의 생애

 

세례자 성 요한의 생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약 2년 전에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의 가실 길을 미리 닦았다. 세상 사람들이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인간의 도덕성 회복을 촉구하였다. 이때가 27년 티베리우스 재위 기간이었다. 세례자 성 요한은 사해로부터 멀지 않은 유다 지방에서 활동했다. 이곳은 그리스도에 대해 좀 더 적대적인 지역이었으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다음 세상을 준비하기 위해 세례를 받을 것을 사람들에게 역설하였다.

 

교회는 그분을 주님의 천사로 인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아들임을 굳게 믿고 주님을 위해 미리 가실 길을 예비하였으며 또한 구세주를 위해 생명을 바쳤기 때문이다.

 

영광스러운 성 루가복음 사도에 의하면, 세례자 성 요한은 유다시(市)에서 신앙심이 깊은 자카리아와 엘리사벳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진리를 맨 먼저 알게 된 세례자의 가계는 이교도들의 횡포에서부터 거룩한 금욕주의 수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신앙 세계를 경험한 세대였다.

 

세례자의 목적은 새로운 왕국이 가까이 왔음을 모든 세대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 왕국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며 회개하지 않고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리스도와 세례자와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로와의 만남과 비슷한 엄숙성이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들에게 세례를 베푼 세례자 성 요한이야말로 더욱 영예롭다 할 것이다.

 

세례자 성 요한에 대해서는 성서에서 충분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의 봉사와 활동에 대해 잘 알려져 있다. 세례자는 마케루스의 토굴 감옥에서 헤롯 안티파스의 명령에 따라 참혹하게 순교했다. 초기 비잔틴 시대에 성인의 유해 일부가 발견되면서 정교회에서는 성인에 대한 공경이 이어져 오고 있다. 세례자의 시신은 사마리아의 세바스티아에 묻혔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소로 소중하게 보존하여 오던 중, 루가 성인에게 세례자 요한의 오른팔을 가져가도록 허락하였다.

 

시리아 태생인 루가 성인은 성해를 안티오키아로 옮겨 세례자 성 요한을 기념하는 성당을 짓고 안치하였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아왔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기적적인 치유의 경험을 했다. 800년 이상 제국 내의 모든 곳에서 오는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콘스탄틴 황제는 제국의 중심인 콘스탄티노플로 성해를 옮겨서 안티옥보다 더 많은 순례자들이 용이하게 올 수 있도록 배려했다.

 

욥이라는 젊은 보제가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성해를 옮기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엄숙한 예식과 함께 콘스탄틴 황제와 총대주교를 선두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현양 축일인 9월 14일 장엄한 소피아 대성당으로 성해가 옮겨졌다. 이장 행렬은 며칠 동안 계속되면서 성인에게 존경을 표하려는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었다.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옴으로써 그들이 아무리 경건할지라도 성스런 분위기가 훼손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하여 성해는 다시 아토스산의 대수도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경건한 분위기와 해변으로부터 20마일가량 떨어진 곳의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인 수도원은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수도원 내의 디오니시오스 성당에 성인의 오른팔이 안치되어 수도자들이 항상 지키는 가운데 개방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다음 날인 1월 7일이 축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