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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영성의 샘터

긍정과 부정

 

긍정과 부정


우리는 환희의 잔을 들었으나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친교의 축배를 들었으나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우리는 의례의 잔을 들었으나 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정의 잔을 마셨으나 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잠에 들려고 잔을 들었으나 지쳐 깨었습니다. 

우리는 굳세어 지자며 잔을 들었으나 나약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세를 올리려 술을 마셨으나 풀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약으로 술을 마셨지만 병들었습니다. 

우리는 평정을 찾으려고 술을 마셨으나 혼란이 왔습니다. 

우리는 신뢰를 쌓기 위해 술을 마셨지만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좀 더 활발한 대화를 위해 술을 마셨으나 어색한 말만 나누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술을 마셨으나 문제가 커지기만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맛보려고 잔을 들었으나 지옥을 마셨습니다.

 

위의 글은 작자 미상의 글인데, 인간이 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서 평화와 구원 그리고 희망을 찾으려 해도 그것이 헛된 노력임을 긍정과 부정의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뜻과 마음을 말씀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의 뜻을 단순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구성하고 교류하는 용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말과 문장이 취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용법을 고대 회랍인들은 schema라고 불렀고 로마인들은 figura라고 했습니다. 그중에서 긍정과 부정의 서로 반대되는 뜻의 말을 대비적으로 표현한 것을 enantiosis라고 합니다. 성경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남들에게 자유를 약속하면서 그들 자신은 부패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2 베드로 2,19). “빛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도리어 어둠이 오고 환하기를 고대했는데 앞길은 깜깜하기만 하다" (이사야 59,9).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이사야 4,18).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2 고린토 4,16).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 (2 고린도 4,17).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2 고린토 6,9).

 

위의 성경 말씀은 서로 대비되는 구절로 이루어져 그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표현되고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유/노예, 빛/어둠, 보이는 것/보이지 않는 것, 순간/영원, 외적 인간/내적 인간, 고난/영광, 거짓/진실, 무명/유명생/죽음 등과 같은 반대되는 의미가 서로 대비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뚜렷하게 우리 마음에 새겨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