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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회 영성/영적 아버지에게 듣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주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감사의 성사를 제자들에게 전해주시면서,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루가 22,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념'이란 정확하게 어떤 의미입니까?

 

성서의 한 단어를 연관된 부분들과 같이 보지 않고, 그 단어를 떼어내어 이해하려고 하면, 틀림없이 잘못된 해석에 도달하게 되고, 심지어는 이단적인 주장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이단들은 모두 자기들의 주장이 성서에 근거를 두었다고 강변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겉보기에만 그렇지 본질적으로는 아닙니다. 그것들은 성서 바깥에 있는, 성서와는 조화될 수 없는 사상들을 성서와 혼합시켜 놓은 것들이었고, 그래서 성서의 가르침과는 다르고, 심지어는 반대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성서는 오직 성서를 통해서만 올바르게 해석된다는 사실은 교회 전통 안에서 무수히 증명되었습니다. 즉, 각각의 주제와 관련하여 성서가 언급하고 있는 모든 내용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을 때만 그 주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념'이라는 단어를 이해할 때도 이와 같은 방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에 더욱 신중한 자세가 요구됩니다.

 

먼저 주님께서 사용하신 이 단어는 네 명의 복음서 저자 중 루가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 저자들은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이 성사를 가르쳐 주신 사건에 대해 언급할 때, '기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다만 빵과 포도주가 감사의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거룩한 피로 변화된다는 것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내 몸이니라. … 이것은 내 피이니라."(마태오 26,26~28; 마르코 14,22~24; 루가 22,19) 여기서 주님께서 사용하신 '이니라'라는 단어는 결코 어떤 숨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이단자들은 주님의 성찬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 단어에 억지로 다른 의미들, 예를 들어 '상징한다' '감추다' 등의 의미를 추가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자신들이 주님을 대신하겠다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들과는 반대로 사도 바울로는 복음 저자들과 똑같은 의미로 신성한 감사의 성사에 대해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몸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사람은 그렇게 먹고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몸이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죽은 자도 적지 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고린토 전 11,29~30)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교회에서는 성체성혈을 영하기 전에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하라고 신자들에게 당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예배에서 영성체를 받기 전에 먼저 "주님이시여, 나는 믿고 고백하나이다. … 나는 이것이 지극히 정결한 주의 성체요, 고귀한 주의 성혈임을 믿나이다."(영성체를 준비하는 기도)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루가 복음 저자가 전하고 있는 말씀, 즉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성한 감사의 성사 때, 거룩한 제단에 놓인 주님의 몸과 피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자들에게 직접 전해주신 그 몸과 피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성령에 의해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하늘로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신자들은 제자들이 그랬듯이 주님의 손으로부터 똑같은 몸과 피를 영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생각으로 기억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사도들과 함께 이 위대한 사건에 실제적으로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교의 한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열한 명의 사도들과 함께

그리고 첫 교회와 함께,

영성체를 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열망이로다."

 

우리 신자들이 거룩한 감사의 성사에 참여하는 것은, 거룩한 사도들이 주님과 함께 했던 바로 그 최후의 만찬 식탁에, 주님을 믿고 고백한 모든 성인들과 함께 실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옛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최후의 만찬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주님의 십자가에 달리심, 부활, 승천의 사건을 함께 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찬예배 동안에 우리들이 받는 은총은, 주님의 최후의 만찬에 참여했던 거룩한 사도들이 받은 은총과 동일한 것이며, 이렇게 하여, 주님의 최후 만찬의 거룩한 은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온 세대 온 세상으로 확장된다는 말입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찬예배에서 영성체를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6) 또 주님께서는 더욱 힘주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요한 6,53) 바로 주님의 이 말씀이 거룩한 성체성혈 성사에서 실제적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한 주님의 말씀이 있는데도, 사도 시대부터 끊이지 않고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져 오는 하나의 교회의 거룩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하여, 억지로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을, 과연 그리스도의 신비를 누릴 자격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있을지 참으로 의문입니다.